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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 天問天答 52

담선(談禪)공부 모임 | 기사입력 2016/09/26 [07:38]
‘에고’는 실재 아닌 ‘자각의 부재’일 뿐

통찰! 天問天答 52

‘에고’는 실재 아닌 ‘자각의 부재’일 뿐

담선(談禪)공부 모임 | 입력 : 2016/09/26 [07:38]
연재 취지-지성적 이해를 통해 무지의 실체를 밝힌다
인간이 역사를 이어 오는 동안에 수없이 많은 역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번 인간들은 그러한 역경 앞에서 스스로의 한계를 실감 하면서
그러한 한계를 타파해 줄 -무언가-에 의지하고
그러한 기대감을 충족 시켜줄 -무언가-를 찾아서
인류문명과 문화가 발전을 해 왔다 할지라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때로는 오해로 인한 대립이 극에 치달았고,
그로인해 -인간의 존엄성-이 물질가치보다, 이념가치보다,
사상가치보다, 종교적 가치보다 터부시되어 왔습니다.
비록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일부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저와 함께 많은 분들이 지성적 이해를 통해 무지의 실체를 알고
자신의 정체성을 깨우침으로 해서,
인간정신의 위대함을 일깨워 나가고자 이 글을 연재합니다.
이것은 저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지성 인류의 자산이 될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우리가 무엇이 되든지, 무엇을 이루든지, 무엇을 믿든지, 어떠한 삶을 살든지,
그러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먼저 아는 것,
먼저 자신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것은 상식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식과 인간정신과 더불어
보편진리와의 거부할 수 없는 상관관계를 밝혀나가 보고자 합니다.
<談禪모임 眞鏡>
 
‘에고’는 실재 아닌 ‘자각의 부재’일 뿐
 
질문 73:모든 문제는 ‘에고’때문입니까?

 
제가 보는 견지에서의 문제는 오직 하나입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를 알지 못하고, 잠을 자고, 잠 속에서 꿈을 꾸는 것입니다.
따라서 ‘에고’에게는 어떤 문제도 없습니다.
 
꿈을 꾸는 동안에는 반드시 ‘지금의 나’가 있습니다. 그런데 꿈을 깨고, 잠에서 깨어나면 꿈속에서의 ‘지금의 나’는 반드시 예외 없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행여나 ‘지금의 나’에 집착할 하등의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나’가 자아(自我)로서 유지가 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의 나’를 ‘나’로 여기며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에고가 유지되는 것은 다른 어떤 이유도 없이, 내가 ‘지금의 나’에 대한 동일시(同一視)이자 집착일 뿐입니다.
 
따라서 자아(에고)는 스스로 존재하는 ‘무엇’이 아니기 때문에, 육체를 조건 삼아 육체가 처할 수 있는 모든 상황과 사건과 조건에 다양한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수행자들은 이 동일시가 자신에 대한 오해인줄 모르고, 여전히 모든 상황과 사건과 조건으로부터 초월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수행과 방편을 통해서 영적인 능력과 영적인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고, 만약 도달했다고 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질문 74:무엇이 ‘에고’입니까? ‘에고’는 어떤 것입니까? 어떻게 해결할 수가 있습니까?
 
저는 무엇이 ‘에고’인지를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실체성도 없기 때문에 어떤 정의(定義)를 내릴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에고’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단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인지?’를 바로 아십시오. 어둠을 해결하기 위해 빛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둠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빛의 부재’일 뿐입니다.
그와 같이 ‘에고’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각의 부재’일 뿐입니다.
 
따라서 자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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